새로운 기술이 모두 우리 사회 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항상 새로운 혼란과 적응 과정을 초래한다.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대대수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서 유용함과 편리함을 느끼면 그 기술은 살아남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외면받기 때문이다. 시티폰, DMB 등이 등장 초기 관심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라진 기술들이다. 또 어떤 기술은 그 시대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다른 시대에는 성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1956년 미국에서 개최된 다트머스 콘퍼런스에서 공학자인 존 매카시와 마빈 민스키가 처음 소개했다. 이보다 6년 앞선 1950년에 발표된 앨런 튜링의 논문 <계산 기와 지능>에서도 인공지능에 관한 아이디어가 발견된다. 이 논문은 인공지는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다각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변순용,이연희 2020). 그런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이제야 인공지능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기술이 되었다. 시대 상황과 맞지 않거나 시대에 앞서 기술이 등장하여 미처 사회나 개인이 이를 수용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 외에도 주변 기술 개발이 더디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 사회 속에서 확산되고 대중화되는 속도는 서로 다르다. 맥킨지 보고에 따르면 5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걸린 식나이 라디오는 38년, 텔레비전은 13년(Dobbs, Manyka and Woetzed, 2015에서 재인용), 아이패드 4년, 인터넷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 9개월, 위챗 4개월로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정보사회에 이러러서 기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기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자리를 잡아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표적인 기술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표현으로 정보혁명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 시기에는 사람과 살마의 관계를 매개하는 소셜미디어와 같은 기술을 통해 전 세계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관계성을 확장하는 시기였다.
기술은 인간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 발판이 된다. 이전까지 기술은 사람과 환경,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면 이제는 우리는 이미 인간과 대등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웹 트래픽의 51%를 인간이 아닌 기계와의 소통이 차지할 정도로 온라인 활도으이 대부분을 기계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기술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해 사람들의 지시에 즉각 반응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삼성 빅스비, 애플 시리와 같은 인공지능 비서는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관련 정보를 스스로 습득하여 분석하고 판단함으로써 해답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전자 제품의 동작에세부터 사람의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곳에까지 적용되어 인간과 직접 의사소통하는 상황도 일어나고 있다. 이제 기술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인간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게 된 새로운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 기술이다. 여기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자연언어 처럼), 사물과 상황을 인식하고(패턴 인식), 새로운 정보를 체계적으로 습득하여 활용할 수 있으며(기계학습),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결론을 추론하여(전문적 시스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지적인 컴퓨터 능력’을 의미한다(변순용, 이연희, 2020) 한마디로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과 사물의 생각하는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인간의 의사결정을 돕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화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바둑 경기에서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적인 바둑 기사 이세돌을 4 대 1로 꺾은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 또한 인공지능의 한 유형이다. 인공지능은 과거 인간의 신체적 노동을 대신하던 자동 기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인지적 노동을 대신해 주는 자동화 기술이자 특정 분야에서는 인간과 대등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리터러시 변화
지금까지 인간이 발명한 기술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사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대량 인쇄 기술이었다. 인쇄 기술은 소량의 자급자족만을 할 수 있다는 관념을 극복하고 제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산업혁명 이데올로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공통적이고 표준화된 지식의 전수를 통해 산업혁명에서의 기계혁명을 가느앟게 하는 데도 대량 인쇄 기술이 기여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를 가져온 것은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 기술어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뿐만 아니라 대량 소비도 가능하다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확산이 급속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보사회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로 가능했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새로운 사회 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글처럼 오래된 것이건, 인공지능 기술처럼 최신의 것이건 간에 의사소통 중간에 위치하여 한쪽의 작용을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신문이나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뿐 아니라 삼성의 빅스비,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와 같은 인공지능 비서 등이 모두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단순히 중계자로서의 기능을 넘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언어는 학습의 공유와 경험의 축척을, 문자는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인쇄술은 지식의 확산과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이 외에도 각각의 커뮤네케이션 기술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창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공되었던 역사가 있다. 문자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누릴 수 있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일부 권력층과 부자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독자, 청취자, 시청자의 역할에 머물렀다. 이들은 소수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소유한 특권층이 전달하는 정보만을 소비하는 단순 이용자에 지나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한 제한된 접근은 권력과 자본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각가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요구하는 역략의 차이에서도 기인한다. 초기 인쇄술이 등장은 문해력이라는 새로운 리터러시 역량을 주목하게 했다. 이때 문해력을 뜻하는 리커러시(literacy)는 라틴어 littera에서 유래했다. 초기에는 철자를 뜻하여, 말이 아닌 글자로 쓰인 문자나 글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쇄술의 대중화는 문자회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되었다.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 매체의 대중화는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하는 도구로서 ‘영상 언어’에 대한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했다. 영상 언어는 문자 언어와는 달리 인간의 행위와 삶 등이 현실 그대로 시각적으로 묘사되는 특성이 있어 영상 언어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현실 재현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역기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비판적 시청 기술이 중요하게 강조되었으며, ‘좋은 커뮤니케이션 기술, 나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게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같은 디지털 매체가 등장하면서는 정보를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안목,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에 대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정보 처리 역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관심과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과 연대해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실행 능력도 중요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데이터가 곧 비즈니스가 되고, 데이터가 수익을 창출하며, 데이터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데이터 경제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데이터 리터러시는 데이터를 통계적/기술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넘어 다양한 데이터에서 가치를 뽑아내고 그것을 해석하고 시각화하여 잘 전달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단순히 수치뿐만 아니라 텍스트나 이미지를 포함한 데이터를 발견하고 조작하고 관리하고 해석하는 역량인 셈이다. 무엇보다 어떤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그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가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에 따라, 리터러시를 매체 중심적 접근 방법이 아닌 ‘사회문화적 접근 방법’으로 개념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사회문화적 접근 방법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제기하는 다양한 방식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리터러시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터러시의 개념도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읽고 쓰는 능력”에서 “사람들이 역동적 표현 자원을 활요하여, 다양한 문화적 의도를 성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구조화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Cazden et al. 1996). 실제로 디지털 미디어 등장 이후 미디어의 생산 및 유통 방식이 변화하고 있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매스미디어 조직이 미디어를 생산하던 시대와는 차별화된 리터러시 개념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랭크시어와 노블(2003)은 ‘뉴 리터러시’ 개념을 제시했다. 뉴리터러시에서는 새로운 멀티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일 뿐만 아니라 멀티텍스트를 둘러싼 새로운 기풍, 즉 협동, 참여, 분산, 전문 영역의 분배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요구하는 역량의 패러다임 변화에서 주목할 내용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에 있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로 하는 역량이 지향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한 개념적 이해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활용하는 ‘활용 능력’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라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 능력의 지향점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표현 및 소통 능력으로서의 인간 능력 완성’에 있으며, 지능정보사회에서 더욱더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역량 핵심점 7가지
- 분석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 창조적인 의사소통자가 되어야 한다.
-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진실 되고 윤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세계적인 시각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기계와의 비교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실천적 지혜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정연재, 2019) 실천적 지혜는 기계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리는 최선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일례로, 전문직으로서 의사와 지식은 순련공의 지식과는 다르다. 의학 지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 놓인 환자의 요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과 적절한 방식으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실천적 능력을 지녀야 한다.
김봉섭(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연구위원)
2장 인공지능 기술 시대의 핵심 역량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