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 당신의 믿음은 ‘확신’인가 ‘신뢰’인가요?

혹시 ‘확신이 죄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피터 엔스(Peter Enns)의 책 “확신의 죄”에서 제기된 화두인데요, 이 책은 개인적으로 저의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은 믿음이라는 말을 폭넓게 사용하며, 때로는 ‘특정 사실을 믿는 것’과 동일하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다”는 말이 유사하게 사용되죠. 하지만 피터 엔스는 이 지점에서 모든 믿음이 같지 않으며, ‘확신’과 ‘신뢰’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확신 (Certainty): 지식에 대한 신념

확신은 “나는 이 지식이, 이 문장이, 이 명제가 옳다고 생각한다”는 지식에 대한 신념을 의미합니다. 즉, “나는 지구가 둥글다고 확신해”처럼 쓰일 수 있는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때로는 ‘죄’가 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게 만듭니다. 확신의 속성은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렸을 리 없어’라는 식으로 주도권을 내가 쥐게 만듭니다.
  • 교만 또는 우상 숭배와 연결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반드시 내가 생각하는 이 테두리 안에만 있는 분이야’라는 확신은 무한한 하나님을 유한한 틀 안에 가두려는 교만한 태도이자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성경 속 사례:
    • 욥의 친구들: 그들은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확신에 갇혀, 욥에게 계속 회개하라고 요구하며 하나님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속 제사장: 자신의 신념 체계, 즉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안 된다’거나 ‘예배가 더 중요하다’는 확신에 따라 강도 만난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지나쳐 버렸을 수 있습니다.

확신은 우리가 현실에서 자신의 신앙 체계로는 해석할 수 없는 고난이나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했을 때 큰 흔들림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날 버린 건가?’, ‘열심히 순종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지?’와 같은 혼란과 불신, 원망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신뢰 (Trust): 인격적 대상과의 관계

반면 신뢰는 특정한 인격적 대상을 향한 믿음이며, 하나님께 주도권을 맡기는 일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이 과정조차도 하나님의 이끄심을 믿는다’는 태도입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는 일: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는 믿음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는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아닌, 변함없으신 하나님, 여전히 성실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는 것이죠.
  • 겸손한 표현: 신뢰는 ‘나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표현입니다. 내가 나약함을 인정할수록 더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이는 오히려 더욱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 성경 속 사례:
    • 욥의 여정: 욥의 여정은 확신에서 신뢰를 배워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확신이 산산이 깨진 후, 모든 인과 법칙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신뢰가 관계 맺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지를 깨닫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은 교리적 지식보다 자신과의 인격적 관계 맺음(“나에게 붙어 있는 것”, “주인의 음성을 듣는 것”)이 믿음이자 신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신학적 근거: 신약 성경의 ‘피스티스'(믿음)라는 단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도 번역될 수 있어, 신뢰의 관점을 지지합니다.

신뢰가 주는 놀라운 유익

확신이 아닌 신뢰의 언어로 믿음을 이해할 때, 우리는 두 가지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불안으로부터의 자유와 평안:
    • 확신은 ‘내가 가진 지식이 틀렸으면 어떡하지?’라는 초조함과 불안을 야기합니다.
    • 하지만 신뢰는 현실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그럼에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더 크시고 내가 모르는 놀라운 계획을 가졌음을 신뢰하며, 확신이 깨지는 과정을 통해 더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갑니다. 이는 하나님께 맡겨 드림으로써 얻는 평안이자 담대한 신앙입니다.
  2. 넉넉한 품과 공동체 형성:
    • 확신은 우리를 좁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내 말이 맞아야 해’, ‘이것만 정답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훈계하려는 태도를 낳습니다.
    • 반면 신뢰하는 사람은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분이 지은 세계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여백’과 ‘넉넉함’을 가져다줍니다.
    •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넉넉함 안에서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신뢰를 통해 생겨납니다.

확신은 필요 없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확신은 전혀 필요 없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교리나 신조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자 뿌리이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를 통해 신앙을 명확히 하고 우리가 믿는 바를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교리에 대한 확신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교리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나아가는 ‘도구이자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교리적 지식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 멀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지점입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신뢰의 삶

신뢰의 언어의 핵심은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급함과 초조함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려 할 때 확신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 같거나 너무 더디게 일하시는 것 같을 때에도,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릴 때 우리는 신뢰의 언어로 신앙을 표현하는 성숙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확신을 넘어 신뢰로 나아가는 여유롭고 넉넉한 품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인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