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의 삶과 신앙을 관통하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입니다. 그는 빌립보서 3장 9~11절에서 그 연합의 신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립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짧은 본문을 중심으로 바울의 영적 열망과 신학적 핵심을 살펴보고, 우리 시대에 던지는 도전을 함께 묵상해 보려 합니다.
빌립보서 3:9~11절의 성경적 의미 (원어 중심 해석)
“내가 바라는 것은, 율법에서 난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 (빌 3:9–11, 표준새번역)
이 본문은 세 가지 중요한 원어 표현을 중심으로 해석됩니다:
- ἐν Χριστῷ (엔 크리스토):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로, 바울 신학에서 존재적 위치를 뜻합니다.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를 말합니다.
- γινώσκω (기노스코): ‘알다’는 말이지만,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 인격적 앎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사귐, 교제를 전제로 합니다.
- κοινωνία (코이노니아): ‘참여’ 또는 ‘동참’이라는 뜻으로, 고난과 죽음에 실제로 함께 참여하는 깊은 결합을 의미합니다.
→ 바울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단지 ‘신앙의 대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그분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관계적 실제였습니다.
바울이 버린 모든 것, 그리고 얻고자 한 부활의 의미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자랑하던 모든 것—혈통, 율법 준수, 종교적 열심—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빌 3:8). 그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것’(δικαιοσύνη)**과 참된 부활(ἀνάστασις)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부활은 두 가지 차원으로 해석됩니다:
1) 현재적 부활 –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
-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
- 죄와 자아를 벗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
- 빌 3:10, 갈 2:20
2) 종말론적 부활 – 장차 완성될 몸의 영화
- 예수의 부활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약속된 미래
- 이 소망은 바울의 헌신과 고난의 원동력이 됩니다
- 빌 3:11, 3:21
→ 바울은 이 부활의 소망을 위해 지금 여기서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학적으로 바울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는 단순히 죄 사함이나 도덕적 삶을 넘어서, 신자의 전 존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신비로운 결합입니다.
- 정체성의 변화: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 (갈 2:20)
- 삶의 방향 전환: 자기를 높이던 삶에서, **자기를 비우는 삶(케노시스)**으로
- 미래 소망의 기반: 현재 고난이 끝이 아니라, 영광의 몸으로 부활할 소망이 있음
→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과거를 끊고, 현재를 새롭게 살며, 미래를 소망 가운데 준비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실현한 삶: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
바울의 고백은 단지 이상적인 신앙 고백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적인 삶으로 구현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바울의 편지를 삶으로 쓴 사람들 같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아시시)
모든 소유를 버리고 철저한 청빈과 자기비움의 삶을 통해, 자연과 피조물 속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나치 체제에 저항하며 “값싼 은혜”를 거부하고,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를 실천하다 순교했습니다.
마더 테레사
가장 낮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사랑과 돌봄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구현한 인물입니다.
맺으며: 당신은 누구와 연합하고 있습니까?
이들은 단지 성자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상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송두리째 바꾸는 존재의 혁명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 가장 귀한 것임을 믿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용기, 그리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적 연합의 여정에 우리 자신을 초대해야 할 때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신앙에서 존재로 사는 신앙으로
고난을 회피하는 삶에서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으로
종교적 자랑에서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좋은 선배들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살기 위해 달려가는 그들의 열정을 보며 ‘왜? 그렇게 살지?’라는 질문을 종종하는데, 바울을 조금씩 알아가며 선배들의 삶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저도 누군가에겐 바울과 선배를 뒤따르는 선배가 되고 싶네요. 예수의 삶과 고난,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길 ‘니가 참 예수 안에서 살고 있구나.’하고요.